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가톨릭에서의 성지순례와 피정의 의미, 그리고 그 차이

by 홀리몰리홀리 2025. 6. 25.

가톨릭 신앙은 단지 머리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로 체험하고 살아가는 삶의 여정입니다. 이 여정 속에서 많은 신자들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따로 떼어 하느님과 더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성지순례와 피정입니다.

 

이 두 가지는 겉으로 보기에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의도와 목적, 형태, 효과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가톨릭에서 성지순례와 피정이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우리 삶에 영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성지순례란 무엇인가요?

성지순례는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는 시간입니다

성지순례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를 방문하는 행위입니다. 이 장소는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된 곳일 수도 있고,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자리일 수도 있으며, 특별한 성인의 삶과 관련된 곳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나자렛, 갈릴래아 호수와 같은 예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나, 한국에서는 절두산 순교성지, 배론 성지, 치명자산 성지 등 순교자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장소가 성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지순례의 목적은 ‘신앙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는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관광하듯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안에 담긴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로 이뤄지는 여정입니다. 신자들은 성지에서 미사에 참여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침묵과 묵상 속에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발로 이동하며 몸을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변화하고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내면의 순례가 함께 이루어집니다.

 

 

2. 피정이란 무엇인가요?

피정은 ‘세상에서 물러나 하느님께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피정(避靜, Retreat)은 말 그대로 ‘세상으로부터 피하여 조용히 머무는 시간’입니다. 가톨릭에서 피정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영적 깊이를 되찾기 위한 내적 여정입니다. 피정은 일반적으로 피정의 집이나 수도원, 교회 시설 등 조용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일정한 시간 동안 말과 활동을 최소화하고, 말씀과 침묵, 기도와 묵상에 집중합니다.

피정의 목적은 ‘나 자신을 하느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너무 많은 말과 생각, 정보에 둘러싸여 삽니다. 피정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와 마주하고,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피정에는 침묵 피정, 묵상 피정, 말씀 피정, 지도 피정(영적 지도자와의 대화가 포함된 피정) 등이 있으며, 1일, 3일, 8일 또는 그 이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용히 머무는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3. 성지순례와 피정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① 방향성과 공간의 차이

  • 성지순례: 특정 장소로 ‘이동’하며 신앙 사건을 체험
  • 피정: 한 장소에 ‘머무르며’ 내면의 침묵과 만남을 체험

② 외적 활동과 내적 활동의 중심성

  • 성지순례: 신체의 움직임이 포함됨 (걷기, 이동, 관람, 공동체 활동)
  • 피정: 외부 자극 최소화, 말과 행동의 절제를 통해 내면으로 집중

③ 목표의 차이

  • 성지순례: 신앙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기억과 계승
  • 피정: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과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

④ 분위기와 태도의 차이

  • 성지순례: 기도와 감동, 다소 외향적인 종교 체험 중심
  • 피정: 침묵과 성찰, 내향적인 영적 여정 중심

 

4. 성지순례와 피정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두 여정은 다르지만 서로를 완성시킵니다

성지순례와 피정은 그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하느님과 더 깊이 만나는 통로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순례를 통해 외적인 사건과 장소를 통해 감동을 받고, 피정을 통해 그 감동을 내면화하는 순서로 연결될 수도 있고, 피정 후에 성지순례를 통해 믿음을 실천하는 순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영적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를 어디로 부르고 계신지를 분별하며 각 여정을 택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영혼이 쉬어가는 참된 여행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지치고, 정서적으로 고립되며, 영혼의 방향을 잃곤 합니다. 성지순례는 신앙의 뿌리를 되찾게 하고, 피정은 그 뿌리 위에 내 삶을 다시 세우게 합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 두 가지를 통해 영적인 ‘쉼’을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여행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내 삶을 바꾸는 하느님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멀리 있는 성지를 찾아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 가까이에 있는 성지부터 천천히 방문해보거나, 일정이 허락하는 피정 프로그램에 조용히 참여해보는 것만으로도 신앙 여정의 뜻깊은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