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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고해성사의 의미와 주기적으로 해야 되는 이유

by 홀리몰리홀리 2025. 6. 20.

가톨릭 신앙 안에서 고해성사는 단순히 잘못을 고백하는 의식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약함과 그 약함 안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는 깊은 영적 체험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분노에 휩싸여 말을 뱉거나, 무관심으로 타인을 외면하는 작은 순간까지도 우리의 내면은 조금씩 하느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이 멀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하느님의 선물이자 치유의 통로입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개인주의와 자의적 도덕감이 강조되는 시대일수록, 고해성사의 의미는 더욱 깊이 되새겨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톨릭에서 고해성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왜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에서 고해성사의 의미와 주기적으로 해야 되는 이유

 

1. 고해성사는 ‘심판’이 아닌 ‘치유’의 성사입니다

하느님은 벌주는 분이 아닌, 용서하시는 분

많은 이들이 고해성사를 떠올릴 때 ‘죄에 대한 심판’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심판대가 아니라, 자비의 품에 안기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새롭게 해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자리입니다. 신부님을 통해 우리가 고백하는 말들은 단지 인간의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직접 드리는 회개의 표현이며, 신부님은 그 통로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용서의 사명을 사도들에게 주셨다는 복음의 말씀(요한 20,23)에 근거해 이 성사는 사도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죄의 고백은 마음의 무게를 덜어냅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은 우리를 점점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고해성사에서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순간, 그 무게는 놀랍도록 가벼워지며, 마음에는 참된 평화가 깃듭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효과가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는 신비한 경험입니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고해성사를 통해 실제로 가능해지는 변화입니다.

 

 

2. 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할까요?

죄는 쌓입니다. 용서도 꾸준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큰 죄를 짓지 않았으니 고해성사는 나와 상관없어요.” 그러나 죄는 항상 크고 명확한 형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심코 지나가는 말 한마디, 습관적인 이기심, 침묵 속의 방관 같은 작고 미묘한 태도 속에서 죄는 서서히 자리를 잡습니다. 성인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일이 반복되면, 영혼은 둔감해지고 죄에 대한 감각도 흐려지게 됩니다. 주기적인 고해성사는 이러한 흐림을 정화하는 과정이며, 우리를 늘 깨어 있게 도와줍니다.

정기적인 성사는 신앙의 깊이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신앙생활은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입니다. 기도와 미사가 영적인 호흡이라면, 고해성사는 그 호흡의 장애를 제거해주는 정기적인 정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인들과 성직자들은 ‘고해성사 없이는 기도조차 흐려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혼에 묻은 때를 닦아내야, 하느님의 말씀도 더 깊이 스며들고, 기도 중에 주어지는 응답도 분명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모든 신자에게 최소한 1년에 한 번, 특히 부활절 전 고해성사를 권고하고 있지만, 더 자주,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받는 습관은 신앙을 깊이 있게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3. 고해성사는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시간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닌 결단입니다

고해성사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의지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결단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언되는 것이기에, 그 힘은 일상에서 실제로 작용하게 됩니다. ‘하느님, 이번에는 진심입니다’라는 고백을 반복할 때,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그 고백대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다듬어갑니다. 성사는 단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구체적인 행동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는 내가 먼저 받아야, 타인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작 자신도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내면의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고해성사는 우리가 먼저 하느님께 용서받는 자리이며, 이 용서를 진심으로 체험한 이가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기적인 고해성사는 단지 내 죄를 용서받는 시간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해가는 근본적인 출발점입니다.

 

 

마무리: 자비는 늘 우리 곁에 있으며, 고해성사는 그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인간의 죄를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때때로 넘어지고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힘입니다. 고해성사는 바로 그 회복의 자리이며, 우리가 다시 빛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느님의 손길입니다. 주기적인 고해성사는 단지 신앙의 형식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새롭게 하는 영적인 재정비입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고해성사를 다시 바라보게 되셨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까운 성당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