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위해 시청에 간 성인” – 파도바 개혁 이야기와 ‘독이 든 음식’ 일화
신앙은 말로만 머무르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성 안토니오. 그는 성당 강론대에서만 정의를 말하던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거리로, 시장으로, 그리고 시청으로 걸어 나간 성인이었습니다.
오늘은 성 안토니오가 고리대금으로 고통받던 서민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파도바 시청에 찾아갔던 이야기와, 그 방문 중 ‘음식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식별했던 사건’을 함께 나누며, 그의 신앙이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리대금으로 고통받던 도시, 파도바
13세기 이탈리아 북부 도시 파도바는 경제적으로는 발전했지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커져 가난한 이들은 점점 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유한 상인들과 지주들이 가난한 서민에게 고리대금을 요구하는 관행이었습니다. 이들은 급하게 돈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높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었고, 갚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집과 땅, 심지어 자녀까지 담보로 넘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 안토니오는 이러한 현실을 보고 더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닿았지만, 인간 사회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당시 사회의 구조적 불의에 맞서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습니다.
시청을 찾아간 성인 – 하느님의 정의를 위한 실천
성인은 파도바 시의회의 권위자들과 대면하기 위해 직접 시청을 방문합니다. 당시 수도자가 세속 행정기관에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이례적이었지만, 성 안토니오는 하느님의 정의가 침묵할 수 없다는 확신으로 그 자리에 나섰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법은 사람을 살리는 법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법은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 단호한 목소리는 시청을 울렸고, 그의 설득은 결국 파도바 시 당국이 고리대금 이자율을 제한하고, 채무자 보호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개혁은 단순히 제도만의 변화가 아닌, 성인의 설교와 기도,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이 만들어낸 역사적 정의의 열매였습니다.
예언자적 식별 – ‘독이 든 음식’을 알아본 성인의 직관
함정일지도 모르는 식사 초대
이 시청 방문 후, 성 안토니오와 그와 함께한 프란치스코회 동료 수도자는 시청 측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습니다. 이는 감사와 존경의 표현처럼 보였지만, 정작 이 음식 안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깨어 있었던 마음
식사 자리에 앉은 성인은 음식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내 동료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이 음식은 먹지 마십시오. 독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이었을까요? 조사가 이루어진 후, 실제로 음식에는 소량의 독약이 섞여 있었던 것이 확인됩니다.
그 독은 그들을 제거하려는 세속 권력 혹은 반대자들의 은밀한 시도였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성 안토니오는 기도 중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 사실을 식별했고, 침착하게 위험을 피했다는 점입니다.
성인의 영적 식별은 왜 중요한가요?
성 안토니오는 단순히 영감을 잘 받는 성인이 아니라, 깊은 기도와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민감하게 귀 기울인 이였습니다. ‘독이 든 음식’ 사건은 그가 현실의 정의 문제를 다루는 중에도 끊임없이 영적인 경계심과 식별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양한 ‘영적 독소’ 속에 살아갑니다. 거짓된 정보, 이기심, 두려움, 자기중심적 판단 등… 성인의 이 사건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복음의 권고를 실천한 한 신앙인의 모범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 믿음은 행동할 때 살아납니다
성 안토니오는 고리대금이라는 구조적 불의를 마주하고 기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리로 나갔고, 시청에 갔고, 위험도 감수했으며, 결국 한 도시의 법과 구조를 바꾸는 작지만 위대한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가 보여준 ‘기도하는 정의’, ‘말씀으로 행동하는 신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면서도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따라 말하고, 일어서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 안토니오가 우리에게 보여준 신앙의 모습이며, 기도와 실천이 일치된 삶이 주는 가장 깊은 감동입니다.
다음 3편에서는, ‘설교자 성 안토니오’의 면모를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복음의 박사”가 되었는지, 프란치스코 성인의 인정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리고 그의 설교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